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치 독일/인물 (문단 편집) === 군사 지휘관 === * [[베르너 폰 블롬베르크]] 제1차 세계 대전에선 참모장교[* 영관급인데도 무려 푸르 르 메티르훈장을 수여받았다.]로 활약하고 1936년에 [[독일 국방군]] '''최초'''로 [[원수(계급)|원수]]계급에 올랐으나 '''33살'''연하인 에르나 그룬과의 스캔들로 1938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전에 군에서 물러나 정작 전쟁에는 참전하지 않은 인물. 흔히 [[히틀러]]의 전쟁의사에 반대를 표한 인물로 자신의 신념을 지킨 정의로운 [[장군]]으로 알려진 모양이지만, 사실 그의 별명은 '''아첨하는 사자''' 또는 '''고무사자'''였다. 그는 [[발터 폰 라이헤나우]] 원수 뺨치는 열성적인 [[나치]]였다. 그는 1929년에 어느 장군보다 먼저 [[나치]]를 접했고, 당시 사회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더욱이 그는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사망하자 [[히틀러]]에게 충성을 서약하기도 했다. * [[에리히 레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해군]] [[제독]]이다. '''해군의 최고참''' [[1차대전]]때 부터 [[유틀란트 해전]] 등 주요 해전에 참여하였고, 전후에는 해군의 재건에 힘썼지만 히틀러가 전쟁을 시작했을 때는 '''"이제 해군은 멋지게 죽을 일만 남았다."'''고 한탄했다. 전후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서 종신형을 받았지만 [[1955년]] 병보석으로 석방되었고 그 후 자서전을 쓰는 등의 활동을 하다 1960년 11월 6일 사망했다. * [[프리드리히 프롬]] 나치 독일의 군인이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예비군 총사령관이었으며 히틀러에 대한 충성과 암살 계획 사이에서 기회주의적인 처세술을 발휘하였으나 결국 의심받은 끝에 처형되었다. * [[디트리히 폰 콜티츠]]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의 주인공으로, 히틀러의 파리 초토화 명령을 거부하고 자유 프랑스군에 항복, 후에 파리 명예 시민칭호를 받았다. 전쟁범죄에 책임이 있다는 말이 있으나, 그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증거도 없고 오히려 네덜란드군 포로들이 학살당하는 것을 막는 등 양심적인 태도를 보였다. * [[안톤 도슈틀러]] 나치 독일의 군인이다. 최종 계급은 보병대장. 1910년에 육군에 입대하여 1944년 3월 22일, 이탈리아 제노바와 라 스페치아 간 철도 터널을 폭파하기 위해 라 스페치아 북방 100km에 상륙한 미군 특수부대원들이 독일 국방군과 무솔리니 당원들에게 체포된다. 이들은 독일군 제135여단 으로 끌려가 심문받은 뒤, 제75 군단 사령부로 이송되었는데 75 군단장이었던 그는 이들을 그냥 총살해 버리라고 지시를 내렸다. 즉 무단으로 미군 포로를 처형했는데, 135여단에서 처형을 늦추자고 하니까 짜증내며 당장 실행하라고 명령을 내렸고, 훗날 이 때문에 도슈틀러는 1945년 10월 12일 로마의 미군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이탈리아 왕국 아베르사에서 독일군 대장의 정복을 입은 채 [[총살형]]으로 사형이 집행된다. 참고로 안톤 도슈틀러 중장의 사형 집행 장면은 [[https://www.youtube.com/results?search_query=execution+anton+dostler|유튜브에 올라와 있다.]] * [[헬무트 폰 판비츠]] 독일 측 [[카자크]] 부대를 지휘한 인물.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파르티잔 진압 임무를 맡았다. 진압은 매우 잔혹했지만 이 때 병사들의 전쟁범죄가 도를 넘어서자 이를 강하게 저지했다고 하며 히틀러에게 슬라브족을 열등 인종으로 분류해서는 안된다고 말한 적도 있다. 전후 부하들과 함께 소련으로 송환되었고[* 독일인이라 송환 대상이 아니었음에도 스스로 송환되었다.] [[표트르 크라스노프]] 등과 함께 처형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